시인 신동엽은 1959년에 등단하여 만 10년 동안 활동하다 39세에 요절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작품들과 4·19의 한복판을 관통한 시정신은 이후 세대들에게 산업사회의 너머를 꿈꿀 대안적 상상력의 모델로 커다란 영향력을 미쳐왔다. 그뿐만 아니라 권위주의 사회에서 그가 저항 시인으로서 자리하고자 했던 존재방식, 창작실제에서 거둔 미적 형식 또한 선구적인 모델로 평가받아 왔다. 신동엽문학관은 생가와 마을, 작품이 구상된 실제 장소들 속에 자리해 있다. 시인의 생애를 구성하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의 성적표, 생활기록부, 반장 임명장, 신분증 등 성장기의 이력을 증언할 수 있는 각종 유품과 자료들도 완비된 상태다. 농업경제학자 인정식의 딸이자 시인의 아내로서 ‘짚풀생활사박물관’을 일궈낸 인병선 여사가 지켜온
신동엽의 유물들은 이미 하나의 박물관을 구성할 만큼 풍부하다.
더욱이 중요한 점은 이 모든 내용이 실제 장소에 하나의 작품처럼 공간미학화 돼 있다는 사실이다. 건축가 승효상의 설계로 들어선 신동엽문학관은 오늘날 부여가 자랑하는 3대 건축물의 하나로 꼽힌다. 신동엽의 시정신에 부합하는 조형물이 어떤 것이며, 문학관이 갖추어야 할 내용이 무엇인지를 건축예술로 펼쳐 보이는 작품 <신동엽문학관>은 건축전공 학도들의 답사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와 함께 부여 출신 화가 임옥상의 설치미술 <시의 깃발>은 신동엽의 시가 바람에 나부끼는 형상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보여준다. 이는 신동엽문학관의 표지와 <생가>라는 시로 된 현판과 함께 임옥상 글씨예술의 정점을 이룬다고 알려져 있다.